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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땅의 상태 (한성노회 박용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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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공허한 상태

genesis 1:1-2

2. 공허하며 (empty)

지난 시간을 이어 말씀을 드리겠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땅의 상태가 혼돈하고 공허하였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말은 한 마디로 은혜를 주시기 위한 말씀이다.

그런데 마귀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땅이 저주를 받았다는 말은 성경에 근거 없는 말이다. 성경에는 마귀의 본질과 그 숫법을 잘 알려주었다. 그것을 깨닫게 되면 믿음의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귀의 방법과 수단은 사람을 유혹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에덴동산뿐 아니라 땅이 저주를 받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신명기 28장을 보라. 불순종하고 죄를 범할 때 철저하게 땅이 저주를 받는 것이지 마귀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는 일이 없다.

그리고 천사는 땅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다. 마귀는 하늘에서 쫓겨나 이 땅을 저주스럽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어느 때 마귀가 아라비아 사막 때문에 살 수 없다고 하던가?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에 마귀는 끊임없이 시험하여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아니면 마귀가 땅이 혼돈하니 그의 악함이 시들해진 일도 없다. 아마 아이티 대지진 참사로 저주와 재앙이 된 것을 마귀가 보고 그 일로 박수치며 좋아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땅을 창조하시고 황폐케 하실 이유가 없다.

 

비유로 말씀 드리겠는데 말씀을 깨닫는데 조금이라고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알몸으로 만드셨다.

그래서 욥도 내가 알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내가 또한 알몸으로 가게 되리라고 하였다.

탕자도 아버지께 상속을 받았으나 다 탕진하였다. 더 이상 자기의 힘으로 살아갈 능력이 없을 때 알몸이 된 거지가 된 것이다. 빈손이 되어서야 아버지를 생각하였다.

(눅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여러분 사람이 태어나면서 공수가 된 것과 탕자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 모든 것을 탕진하여 빈손이 된 것과 같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한 땅이 공허하다는 것과 저주와 재앙을 받아서 혼돈하고 공허하는 것은 다르다. 타락한 천사장이 마귀 대장이 되어서 하나님의 창조를 대적하니 하나님이 진노하여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성경에는 인간이 범죄 하지 않았을 때는 절대로 땅에 저주나 재앙이 없었다. 그 이유는 땅은 하나님의 은혜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땅이 저주를 받은 것을 인간이 죄로 인함이요. 인간이 죄를 범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도 혼돈하고 공허하게 하였다.

인간이 죄를 범하니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컹귀가 나고 가인이 아벨의 무죄한 피를 흘릴 때 땅이 저주를 받았다. 노아 때도 역시 마귀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홍수 심판을 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타락하여 심판한 것이요. 소돔성도 천사가 타락해서 불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죄 때문이다.

 

창조 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할지라도 죄가 없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리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베푸실 것을 계시하기에 가장 좋은 배경이다.

혼돈한다. 질서가 없다. 폼이 없다. 형체가 없다 이것은 부족한 것을 말한다.

그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달렸다고 하는 말이니 이는 곧 절대적인 은혜를 깨닫게 말씀이다.

알몸으로 태어난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과 같이 공허라는 말씀은 은혜의 말씀이다. 좀 더 확실하게 말하여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예언한 말씀이다.

비록 타락하여 탕자처럼 공허가 되었어도 그의 영혼을 채워 주실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요. 탕자에게는 더 큰 은혜가 요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어려운 중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시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살 수 있다. 이런 형편에서 하나님의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이 공허라는 단어는 거부할 수 없는 그 은혜를 생각나게 하신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런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과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라고 하였다. 창조하는 시간부터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을 최고급의 말로 표현하자면 불가항력적인 은혜이다.

아무리 넓은 땅을 주고 세상에 있는 모든 은금보화를 주어도 예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공허란 한 단어 속에 그리스도의 사상과 이념이 넘쳐나고 있다.

비록 땅은 혼돈하고 공허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드릴지 모르지만 이런 말을 복음이라고 한다.

땅이 공허하다는 말씀을 마귀를 저주한 결과로 본다고 하면 이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마귀왕이라고 하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마귀로 보는 것과 같은 죄를 범할 것이다. 그래서 주를 위한 열심히 이렇게 무서운 죄를 짓고 자기의 영혼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여러분! 율법에서 예언한 복음을 듣는 귀중한 시간이 되시기 바란다.

이 텅 빈 땅을 채우려고 하지만 인간은 채울 수가 없다. 하나님만이 홀로 다 채워주셨다. 하나님의 창조로 채워주시는 것 하나 하나가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는다.

또한 앞으로서 무궁무지하게 은혜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나님의 법으로 정한 것이요 또한 믿음의 소망을 주시는 것이다.

 

이 우주 삼라만상을 모두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의 손으로 채워지고 영광을 받으셨다.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었지만 우리는 무엇이 부족한지 거머리의 두 딸처럼 다고, 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더 먹고 싶어 하는 거머리처럼 인간은 끝이 없이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신다. 그런데도 텅 빈 것이 두려워서 하는 말이 마귀가 땅을 저주스럽게 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믿음을 가지자. 하나님은 우리가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신다. 창조한 것이 부족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셔서 더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것이 주의 뜻대로 이루기를 기도하고 소망하면 된다.

그래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창조하실 때 땅의 상태가 폼이 하나도 없고 텅 빈 것은 인간이 채울 수 없듯이 각자의 마음도 채울 수 없다.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 가져도 마음을 채우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주었지만 아담의 마음을 채우지 못해 선악과를 따 먹는 것과 같이 이 세상 것으로 우리의 마음도 채우지 못함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솔로몬도 그의 부족한 마음을 채우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그는 금이 일 년에 수입 된 돈이 666달란트였다. 순금이 22톤 644kg 이다. 그것이 해년마다 수입이 되는 액수이다. 핸드폰으로 수출한 것도 아니다. LCD TV를 파는 것도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를 할 때 모든 나라가 평화를 누리고 그에게 선물한 것이다. 솔로몬은 그 돈으로 자기의 마음을 만족하지 못하였다.

사람이 결혼한 것이 행복해서 두 번 세 번 해도 마음을 채울 수가 없다. 솔로몬은 궁녀들을 보라.

그에게는 일천 궁녀가 있었으나 그 마음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기를 젊어서 취한 아내로 만족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만나게 하는 여자로 마음을 만족하게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을 창조한 땅이 공허함을 통하여 알려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면 텅 빈 세상을 아무도 채울 수 없다. 천사도 채울 수가 없다. 이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만 채울 수 있다. 그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마음을 채울 수 있음을 여러분! 믿는가? 아멘! 할렐루야!

솔로몬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 보시기를 바란다.

(전 1:7) (7)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우리 마음을 바다라고 생각해 보시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 중에 돈을 강물로 비유하여 강물이 바다를 채우지 못하듯이 돈이 우리의 마음을 채울 수가 없다. 세상 어떤 것도 영적인 만족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채울 수가 없다.

그런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우리 주님을 마음에 모시게 되면 그 때에 만족할 수가 있다. 가장 행복하며 이 세상에 그리스도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여러분 전능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기를 바란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로 우리의 영적인 마음을 채울 수가 없으나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면 만족하고 평안하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행복한 마음이 강물처럼 흘러넘치게 된다.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우리의 마음에 주님을 모시면 기쁨이 강물처럼 흘러넘친다. 그러니 창조주 하나님 그 하나님과 동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기를 바란다.

 

그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서 여러분 마음을 비우지 말라. 그 마음을 비우면 마귀가 달려든다. 내 모습 그대로 주님을 모시기를 바란다. 내 모습 그대로 주님을 모시기만 하면 된다.

마음이 청결한 것을 어떻게 해석을 하는지 모르지만 우리 주님을 영접하게 되면 그 더럽고 추한 마음이 청결하게 하신다.

여러분 스스로 마음을 비울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스스로 정결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을 오해한 것이다. 불교에서 말한 대로 마음을 비우라는 말을 검증도 없이 사용하지 말고 성경이 말씀하신 것을 들어보라.

성경이 말한 대로 우리 마음 그대로 주님을 모시기만 하면 우리를 정결하게 하신다. 우리 주님이 성령을 보내주어 회개하고 거룩하게 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을 비우면 마귀는 순식간에 우리에게 점령을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행하는 것이 마음을 비운 것이다. 주님은 그 빈 마음을 이렇게 설명하신다. 이전에 있었던 귀신보다 강한 일곱을 더 데리고 들어가 더욱 악해졌다고 하셨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사야도 자신이 거룩하게 할 수 없었다. 자신이 거룩하고 흰 눈보다 더 희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거룩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주님이 이해가 되고 깨닫게 되고 성령께서 그 마음을 정결하게 하신다고 하였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 마음에 찾아오셔서 보혈의 피로 눈처럼 흰 양털처럼 희게 하신다.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하신다.

우리 마음에 이미 욕심으로 가득하고 죄악으로 가득한 마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주님이 오심으로 정결하게 되고 거룩하게 된다. 흰 눈처럼 되고 흰 양털처럼 된다.

주님을 영접하게 되면 땅이 공허한 것을 만물로 충만하게 한 것처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에 충만하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란다.

말씀을 만물을 채우듯이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실 줄로 믿는다.

우리의 인생을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내 손으로 내 인생을 책임을 지겠는가? 아니면 돈에다 우리의 인생을 맡기면 다 채워질 것으로 생각하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에 모든 것을 맡기면 우리의 마음을 채워 주리라 믿는다.

텅 빈 땅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모두 다 채웠다. 부족함이 없도록 채웠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도록 채우셨다.

그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채워주실 것을 믿으라. 그것이 성령 충만이라고 한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마음에 모시기를 바란다. 주님을 모시게 되면 타락되고 저주 받은 이 땅에서 우리의 마음에 새 하늘과 새 땅과 같은 천국을 창조하심을 믿자.

공허하고 혼돈한 땅을 하나님께서 다 채우시는 능력을 믿고 맡기자.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만족할 것을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은혜의 말씀이다. 처음 땅을 채워주신 것도 은혜이지만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 은혜 중에 더 큰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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